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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포퓰리즘에 대한 잡상

오삼도리 2017. 1. 18. 07:20




원래 포퓰리즘은 러시아에서 발생한 19세기 중후반 농본주의적 급진사상을 미국에서 받아들여서 발전시킨 것으로, 19세기~20세기 초반 미국의 혁신주의의 일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포퓰리즘은 엘리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다만 현대에는 대중주의보다는 다원주의가 더 적절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엘리트주의는 일반 서민들은 위대한 정치가들의 영도에 잘 따라가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태어난 것이 포퓰리즘이며 정치 엘리트들이 던져주는 정책을 받아먹는 것이 아닌 대중이 이끄는 정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애초에 민주주의와 대중주의는 한 뿌리입니다.

미국에서는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정형화된 정당의 틀마저 깨는 혁신주의의 일종이었습니다. 국익이 없는한 대외정책을 거부하고 연방군의 비대화 반대와 민병대의 역할 확대까지 주장하였습니다. 당연히 기존의 정치엘리트들은 이를 곱게 보지 않았으며 우매한 대중들이 당장의 이익에 눈멀어서 장기적인 국익을 망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본령은 국민에 의한 정치인데 직접적 실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가는한 상위 계층과 일반 하위 계층이 형성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엘리트들은 일반 국민 보다 잘나고 능력이 출중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를 운영합니다. 따라서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 즉, 대중주의의 적절한 조화가 가장 좋은 체제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적절한 조화가 좋지 극단적인 것이 좋은 경우는 찾기 힘듭니다. 엘리트주의가 만연하여 일반 국민들이 영도자에게 이끌려 정치참여에 담을 쌓거나 완전히 엘리트주의를 배격하여 일반 국민들이 당장의 이익에 이끌려 나라를 이끌어간다면 바로 중우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포퓰리즘이란 정치의 양태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이상을 가진 다른 이념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도 반독점적 경쟁법을 추진했던 미국의 인민당, 미국의 매카시즘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알겠지만, 전자는 좌파에 가깝고 후자는 우파정책이었습니다.

원래 인민주의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인민이라는 단어에 대한 어감 때문에 민중주의, 또는 대중주의로 번역되었습니다.

물론 완벽한 모델하에 대다수나 모두의 이득을 위한 체제로는 당연히 대중주의가 훨씬 더 우월합니다. 만약에 우리 모두가 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고 목표가 대다수, 혹은 모두의 이득이라면 당연히 대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대중주의가 합리적입니다. 애초에 엘리트주의의 시작이 대중은 우매하니 소수의 잘난 사람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대중은 이들을 따르자였습니다. 하지만 엘리트들이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라서 대부분의 엘리트주의의 현실은 소수의 잘난 사람들이 모두의 이익은 거짓이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대중을 부려먹는 막장 사태가 많이 일어났으며 신권정치, 왕권정치, 귀족정치 등의 것들과 하등 다른 것 없는 형태가 됬습니다.

따라서 대다수나 모두의 이득을 위한다면 당연히 대다수인 대중들에게 권력이 돌아가는게 옳고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잘난 사람들도 완벽하지 못한데 일반 대중들 역시 완벽하지 못하니 대중주의 역시 많은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다수의 단기적인 이득을 위하여 장기적인 비용과 이득을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있고, 대중들에게 더 장기적인 이득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줄수 있는 엘리트주의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중동의 독재 정권들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되자 오히려 상당수 아랍인들의 지지를 받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된 사례처럼 다수의 이득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다수에 의한 압제와 소수자, 약자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극우로 치닫은 사태가 바로 나치즘파시즘이다. 현대의 네오 파시즘 역시 우파 성향 네오 파시즘과 좌파 성향 네오 파시즘을 불문하고 대개는 이러한 대중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한 가문이 선거구를 독점하여 선거구를 세습하고 관료주의가 팽배한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곳입니다. 일본에서 형성된 포퓰리즘에 대한 편향된 개념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수입되어 매니페스토처럼 객지에 와서 고행하는 외래어가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에서의 포퓰리즘의 정의는'대민영합주의', '대중영합주의'로 번역하며 민주주의의 최악의 정치체계라 부르기도 한다. 즉 민중의 의견에 국가가 영합하여, 그 지지율만 쪽쪽 빨아내는 방식의 정치체계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민영합주의는 우민화 정책과도 함께 하는 맥락을 보입니다.

이런 정치는 시민의 의견에 호응하는 민주주의적 정치체계같아 보이지만, 사실 겉으로만 호응하는 척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거 때는 온갖 잘나보이는 정책을 남발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열광하게 하고, 그 이후로는 모른척 하고 또 지지율이 나빠지면 이러한 짓을 남발하는 방식의 정치방식입니다. 참고로, 표를 얻기 위한 대중주의를 표(票)와 포퓰리즘의 합성어 '표퓰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제대로된 정치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게 되므로 국가의 효율은 점점 나빠지게 되며,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공약만 남은 허울뿐인 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러한 겉멋만 든 정책은 당연히 현실적 가능성 여부는 무시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단 상대방을 까는 것으로 시작되는 한국 정치의 특성상 2010년경 무상급식 논란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신문 등지에 본격적으로 출몰 회수가 늘어난 단어기도 합니다. "망국적 포퓰리즘"이 관용어구가 되어버렸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왜곡된 의미입니다. 포퓰리즘은 단순히 대중과 엘리트를 동급선상에서 보고 대중이 주체가 되는것을 말합니다. 포퓰리즘, 즉 대중주의는 민주주의가 추구해야할 가치 중 하나입니다.
정치적 색채가 짙어진 용어는 선전용어, 어떤 소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용어로 사용되기 마련인데 이러면 당연히 학술적인 의미에서 획정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정치적 사용과 노출로 인해 명백히 광대한 포퓰리즘의 정의 중 매우 협소한 부분만을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사용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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